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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L]공중 나는 새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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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26절

공중의 샐르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오늘 소개할 찬양은

찬송가 588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입니다

 

이 찬송의 작사가는 우리나라에서 예수님을 전한 민로아 선교사님입니다

민로아 선교사님의 본명은 프레드릭 밀러지만

우리나라에서 선교하기 위해 한국식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민로아 선교사님은 1866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의사였고 부족함 없이 복음 안에 자란 그는

피츠버그 대학과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한 후 북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선교사님은 미국에서의 삶보다는 주님이 부르시는 좁은 문으로 걸어가고자 했습니다

 

1892년 11월 15일

선교사님은 부인 안나 리네이크와 조선에 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처음 맡은 사역은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세운 예수교학당을 맡아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교학당은 현재 경신중학교의 옛 이름이며

도산 안창호 선생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온 학교입니다

안창호 선생님은 민로아 선교사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는 중 첫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힘든 와중에 이 아이는 큰 위로와 기쁨이었지만

불과 8개월만에 아이는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는 아이를 양화진에 묻고 3년 뒤 둘쨰 아이를 낳습니다

하지만 둘쨰 아이도 태어난지 하루만에 하늘나라로 떠나게 됩니다

1년 뒤에는 사랑하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아내마저도 떠난 1년 뒤

선교사님은 서울을 떠나 청주로 선교지를 옮깁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크지만 맡은 사명을 위해 다시 선교의 길로 돌아온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희망은 없으며 술과 담배와 도박에 빠진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마음 아팠던 선교사님은

주신 사역을 품고 많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선교사님은 찬송가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찬송가 작사를 많이 했는데

오늘의 찬양 공중 나는 새를 보라도 이때 지은 찬송입니다

 

민로아 선교사님은

사랑하는 가족을 하나님이 정하신 사역지에서 잃었습니다

계속되는 슬픔 속에서도 선교사님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고민하는 것이 아닌

먼저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구할 때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십니다

내일 일을 고민하지 말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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